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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퇴직연금이 도입되고 17년이 지났지만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여전히 '덩칫값'을 못하고 제자리걸음이다. 300조원에 달하는 적립금 규모에 걸맞은 질적 성장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무관심, 가입자의 정보 부족, 금융회사의 소극적 운용 등으로 막대한 적립금은 연 수익률 1~2%대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매일경제가 삼성증권에 의뢰해 확정기여(DC)형 가입자 2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입자들 중 최근 1년간 상품 운용 지시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가입자가 절반(48.6%)에 달했다. 가입자들은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로 '투자상품 선택 어려움'(13.8%), '원금 손실 우려'(11.0%), '금융회사에서 운용하는 것으로 생각'(11.0%) 등을 꼽았다. 상품 운용을 지시한 가입자 역시 연 1~2회(33.3%)가 가장 많았고 연 5회 이상의 적극적인 가입자는 10.5%에 불과했다. 투자 운용을 기업에 일임하는 확정급여(DB)형은 지난해 말 현재 전체 적립금의 58%에 달하지만 예·적금과 같은 원리금보장 상품에 대한 '쏠림 현상'이 극심해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금과 예·적금에 전체 적립금의 95.2%가 잠자고 있다. 작년 말 DB형 수익률이 1.52%에 불과한 것도 그 때문이다. DB형과 달리 가입자가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직접 굴릴 수 있는 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마저도 원리금보장 상품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86.4%가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입자와 금융회사 모두 투자 수익률에 대한 의지와 기대가 부족하다 보니 펀드나 주식 등 실적배당형 상품보다 원리금보장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번 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중 3명은 투자 비중의 50% 이상을 원리금보장 상품에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실 발생 우려'(59.1%)가 가장 큰 이유다. '투자정보 부족'(20.0%), '투자상품 부재'(17.1%) 등이 뒤를 이었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생활을 위한 '보루'다. 그만큼 가입자들은 원금 손실에 대한 우려와 동시에 수익률에 대한 기대도 크다. 이번 조사에서도 투자상품 선택 시 수익률을 최우선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응답이 65.7%에 달했다. 퇴직연금 운용에 소극적인 이유로는 '근무와 자산관리 병행 어려움'(31.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투자정보 부족'(24.8%), '너무 많은 상품'(17.1%), '투자할 만한 상품 부재'(16.2%) 순으로 나타났다. 결국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연금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선 가입자들의 인식 전환과 함께 금융회사들의 보다 적극적인 가입자 교육, 상담 서비스가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다음달 도입되는 디폴트옵션이 이처럼 정체된 국내 퇴직연금 시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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