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얼마나 더 필름을 쓸 수 있을까.
언제까지나 호황일 것 같던 현상소나 필름 관련 업체들이
하나 둘 문을 닫거나 작은 가게로 옮겨가고 있다.
수동기의 메카였던 충무로에는 이제 슬라이드 현상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필름은 하나 둘 단종 되어서 이제 쓸 만한 것은 몇 종류 되지 않고,
필름과 현상 가격 또한 치솟아서 한 컷에 천 원 이상이 소요되기 시작한지 오래다.
카메라 중고장터에는 수동기를 정리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없어서 못 구했던 명기들이 헐값에 -전성기에 비하면- 내놓아지는 기현상이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적잖은 돈을 주고 고급 노출계를 구입했다.
거의 새 제품을 신품 가격에 비하면 꽤나 싼 값에 주고 샀고,
좋은 기기로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으리란 기대에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내내 찜찜했다.
나 혼자만 시대를 역행하는 기분.
이쯤 되면 난 정말 지금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스타일이라든지 결과물에 대한 고집이 아니라
이젠 아날로그에 대한 아집이나 집착만이 남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
작품은 도구나 방법, 과정 등을 떠나서
결과 그 자체로 말해야 한다, 말할 수 있다는 주의를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아직 내 머릿속엔 필름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DSLR이든 똑딱이든 스마트폰이든 간에 사진은 찍으면 된다, 찍어서 결과만 좋으면 된다,
수동기에 따른 수 배, 수십 배 불편한 과정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극명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라는 생각들을 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아직 필름이 좋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이건 잘 된 생각일까. 아직 유효한 생각일까.
냉장고 속엔 수년 전 사재기한 필름이 아직 수십 롤 남아있고,
나는 렌즈라든지 필터 같은 수동 장비 구입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갖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필름을 쓸 수 있을까.
눈에 뻔히 보이는 미래.
요즘 나는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만 같다.
|
|
|
portra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