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작은 것보다는 커다란 것에 관심이 많다. 아니 다르게 말하면 커다란 것들이 작아져서 커다란 무언가를 이룬 것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왜 작은 것들에 주목했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아무래도 내가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때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갖게 된 카메라는 캐논사의 익시라는 제품이었다. 지금은 소위 똑딱이라고 불리는(약간은 하대하는 느낌이 가미된) 디지털 카메라였던 그 제품은 매우 작았고, 크기에 비해선 다소 무거웠으며 얼마간의 광학 및 디지털 줌과 200만 화소의 ccd를 지닌 기기였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퀄리티는 썩 좋질 않았다. 사진에 관해 문외한이었던 나조차도 그것을 어느 정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눈으로 보았던 풍경은 모니터에선 늘 밋밋하게 표현되었고 포토샵의 힘을 빌어보아도 도리어 투박해질 뿐이었다. 해서 내가 내린 대안은 작은 사물을 담는 것이었다. 흔해 빠진 커피잔이라던지 음식 등을 찍으면 그나마 열악한 퀄리티가 숨겨지는 듯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사물을 찍는 것이 내가 이미지를 잡아내는 방식과도 적잖이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찍을 만한 것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있기 보다는 한발자국 더 다가가 가까운 거리에서만 볼 수 있는 세세한 부분들을 담아대는 데 열중했다.
내 사진은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익시를 쓰던 상당한 기간을 비롯하여 필름을 쓰게 되면서도 그 스타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커다란 것들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앞서 커다란 것들이 작아져서 커다란 무언가를 이룬 것에 관심이 많다며 조금 어렵게 말한 얘기는 결국 풍경류의 사진을 말하는 것이다. 풍경을 찍는 걸 보니 노인이 되어가는 거 아니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오랫동안 작은 것을 들여다보길 즐기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조하는 맛도 나름 재미가 있어졌기 때문이다. 이젠 늙어서 가까이 다가가기가 귀찮아진 것이 아니냐 하면 또한 할 말이 없지만.
풍경은 사실 어려운 카테고리다. 왜냐하면 풍경만큼 사진가의 개성이 드러나기 힘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수많은 사람들이 소매물도의 사진을 찍지만, 그 사진은 그저 소매물도일 뿐인 경우가 많다. 사진가는 없다는 얘기다. 프레임의 차별화에도 한계가 있고 결국 고유의 색감을 강조하는 보정에 기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달리 말해 풍경은 누구나 잘 찍기 때문에 더더욱 잘 찍기가 어려운 분야다.
물론 내가 그 대열에 합류하여 풍경의 대가가 되려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풍경사진에 딱히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사람들이 소위 인물이 아닌 비인물 사진, 즉 portrait와 거의 반대어의 개념으로 landscape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인물이 아니라면 풍경, 이라는 논리인 것처럼 느껴져서 쉽게 수긍할 수 없다고나 할까.
다만 나는 사람들이 보통 일컫는 풍경사진처럼 좀 더 대상을 멀찌감치 바라보되 보물찾기 하듯 작은 것을 열심히 들여다보던 때와 같은 기분으로 이 풍경엔 도저히 없을 것 같은 정서를 내 방식으로 담아내고 싶을 뿐이다. 말하자면 나는 풍경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마음을 처음 구체적으로 정리하고서 혼자 사진을 찍으러 나갔던 것이 작년 추석 때였다. 연휴의 대낮에 차를 몰고 이태원을 향하면서, 사진을 건지지 못해도 좋으니 내가 도무지 찍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의 풍경을 담아보자 마음먹고 촬영한 사진들이 ‘another day another way’이다. 그리고 그 의도를 조금 다른 형태로 확장하여 담은 풍경들이 ‘meaningless #2’와 ‘in my place’이다.
요즘은 그런 식으로 예전 같으면 결코 찍지 않았을 프레임의 장면을 일부러 찍어내면서 또 다른 세계에 나름 매력을 느끼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조금은 하드보일드한 것들에도 주목하고 있다. 나는 늘 사진에 내 특유의 정서를 주입하는 것에만 몰두해왔는데 그러지 않는 것에 대한 실험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아직은 좀 더 다양한 것들을 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portra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