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지난 겨울에 열린 <lapis_한정민 사진展_Unsaid>에 관하여 2007.7.25~26 이틀간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T: Teru
L: lapis
T: 예술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하면, 예술가로서의 인생은 어떻게 시작된다고 생각합니까.
L: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같은 사물을 보거나 경험을 하더라도 리액션이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시각(또는 시야)에 대한 애정과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대중 일반과 다른 자신만의 시각을 특화하여 거기에 영구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이 예술가입니다. 즉, 그 자신만의 시각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그 순간 예술가의 인생은 시작됩니다.
T: 어느 분야의 예술이든 데뷔작이 갖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이번 첫 사진전이 가지는 의미와 성과는 무엇입니까.
L: 대부분의 예술은 감상자에게 보이는 것을 목적 또는 수단으로 합니다. 특히 대표적인 시각 예술인 사진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사진가에게 있어 전시는 예술 활동의 정점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게 있어 첫 사진전은 소녀의 초경 같은 것이었습니다. 피를 흘림으로써 성숙한 여인으로 재탄생하는 것.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자신의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초경이었습니다.
T: 개인전을 열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L: 전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유명 작가는 더더욱 아닙니다. 하지만 예술로서 사진을 한다고 하는 자부심은 뚜렷이 가지고 있기에 전시에 대한 꿈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게는 언제쯤이나 전시회를 열 기회가 올 것인가를 막연히 상상하다 문득 생각이 바뀌어 능동적으로 해보자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전시라고 하는 것을 꼭 유명한 작가가 커다랗고 화려한 갤러리에서 열어야만 하는 법은 없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의 전시는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것은 최선이었고 최고의 결과물이었습니다.
T: 사전에 계획에 의해 의도되고 구성된 씬을 촬영한 작품과 순간적인 영감에서 비롯된 작품이 있습니다. <Relationship>을 비롯하여 한정민씨의 작품에선 전자의 느낌이 강합니다. 두 방법에 대한 본인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L: 흔히 말하길 사진의 묘미는 순간포착에 있다고 합니다. 혹자는 연출이 개입된 사진의 예술성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운명적인 찰나를 담은 사진만이 임팩트를 지닌다고도 합니다. 그와 반대로 치밀하게 계획되고 의도가 다분히 반영된 좋은 사진들 역시 무수히 있습니다. 사진을 평가함에 있어 연출이나 포장(보정, 전시 방법 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이 경우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느 한쪽만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기막힌 캔디드 사진이나 디지털 아트를 넘나드는 그림 같은 사진 역시 좋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의 작품들 중에는 우연에 의한 산물도, 여러 테이크를 거친 계획된 사진도 존재합니다. 순간적인 촬영 기술을 사진적 재능이라 본다 간주했을 때, 궁극적으로 양자를 절묘하게 조화시킨다면 정말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T: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대화를 할 때, 말을 언어의 수단으로써 이용함에도 그 의미 전달에 있어서 빈번히 오해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전시회에서 한씨는 사진의 이미지와 제목을 전부로 타인과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의도하였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전달의 한계에 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L: 예술에 있어 오해는 불가피합니다. 작품이 감상자와 상호 대화할 때에 충분한 이해로 귀결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때로 어떠한 오해는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대변하듯이 더 나은(정의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전 항상 오해를 전제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해를 시도합니다. 제가 사진을 전시하면서 직접적인 제목이나 자상한 설명을 달지 않는 것은 오해와 이해를 넘나드는 예술의 특질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러한 양가성은 "Unsaid"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T: <Relationship>은 본 사진전 "Unsaid"의 의미를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 관한 간단한 코멘트를 부탁합니다.
L: 그림자로 형성된 문에서 누군가가 손을 내밉니다. 그가 누구인지, 그가 어떠한 곳에 서 있는지, 누구에게 손을 내미는지는 디테일 없는 실루엣처럼 불투명합니다. 그가 하지 못한, 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작은 손짓. 그것이 이사진의 의미이며 “Unsaid"의 테마입니다.
T: <Something About Us>에서 칠이 벗겨진 손과 배경의 아웃포커싱 된 사람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L: 전면에 크게 부각되는 여인의 손은 오래되어 칠이 벗겨진 마네킹의 손입니다. 이는 상처 받은 존재를 의미하며 아웃포커싱 되어 흐릿하게 보이는 남자는 상처를 주는 존재를 메타포 합니다. 하지만 가늘고 여린 손에는 애틋한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그 둘, 어쩌면 우리 사이에 일어났던 어떤 일. 이 사진의 구체적 내러티브는 관객에게 열려 있습니다.
T: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L: <Return>입니다. 저 사진의 장소는 저의 집입니다. 실내에서 현관문에 쳐진 발에 담긴 햇살을 적절한 심도 표현을 통해 보케를 부각시킨 사진입니다. 늘 무심코 바라보던 문밖에 펼쳐진 소소한 풍경들이 발에 투영되었을 때 저는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라함 속에서 들꽃 같은 아름다움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던 순간, 이 사진엔 저의 근원적 정서가 듬뿍 담겨져 있습니다.
portra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