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소에서 필름을 받게 되면 으레 라이트박스에 얹어서 잠깐이나마 보기 마련이다.
슬라이드의 경우엔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한데, 스캔 후 보정 과정에서 필름 원본의 그 느낌을 재현하려는 것에 가장 공을 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스캔이 만족스럽게 되지 않는 탓.
네가티브의 경우엔 간단히 톤을 살핌으로서 의도한 노출이 잡혔는지를 보거나 초점이 원하는 대로 잡혔는지만 확인하고 만다. 반전되어 있기 때문에 흑백이나 칼라나 제대로 된 감상은 힘들다.
사진의 선별은 대체로 이 작업에서 거의 결정이 난다.
프레임이야 찍을 당시에 충분히 고민했던 상이 이미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고, 결국 초점, 노출, 톤 정도를 후에 확인하면서 선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캔 후에 2차 선별을 하게 되는데, 사실상 라이트박스에서 잠깐 보았던 그 첫인상에 지배 당하기 마련이다.
찰나의 예술이 아니랄까, 좋은 사진은 그토록 짧은 순간에 결정 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따금 수년 전에 찍은 사진들을 훑어 볼 때에 안중에도 없던 사진들이 눈에 들어오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나름 확고한 주관과 주의를 가지고서 가차 없이 내버렸던 사진들에게서 뒤늦게 의외의 임팩트를 받게 된다. 혹은 반대로 당시에 고민 끝에 골라내었던 사진이 이제 와서는 형편없이 보이기도 한다.
사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좋아진다거나 나빠진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조금은 객관적인 방향으로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의 선별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1, 2차 선별 과정은 필수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근본부터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차후에 지난 사진을 살펴보는 3차 과정을 더함으로써 좀 더 완벽한 선별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 혹은 몇 년을 묵히고 나서 사진을 골라내는 것이 이상적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자신의 시가 3일만 버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던 시인이 생각난다. 창작물에 스스로가 객관적인 감상자가 되기란 그만큼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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